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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책 이야기

아몬드

by 이요상 2020. 12. 5.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알게 되는 책이 있다.

 

내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란 걸. 
짙은 초록색으로, 온통 겨울의 질감으로, 손안에 감기던 그 안도감으로.

 

 

 

프롤로그 P.9

 

 


2017년 출간된 책이었다. 읽었다는 사람이 많았고, 서점에서 도서관에서 종종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무뚝뚝한 표지를 만난 것은 독서모임 미림에서였다. 

 

찰스님의 손에서 뉴욕삼부작님의 책장으로, 그리고 다시 내 손으로,
*그들은 책을 읽은 뒤 그대로 덮어둘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다음 타자를 찾았다. 그리고 그건 나였다.

 

 

너는 누구니, 나에게 어떤 감상을 데려다줄 거니. 




청소년 소설, 채 300쪽도 되지 않는 두께.
핫한 책들이 늘 그렇듯 전개는 대중적일 거라 예상했다.

게다가 그동안 읽었던 청소년 소설들이 내게 무언가를 남기는 일은 드물었다.

<유진과 유진 _ 이금이> <내인생의 스프링 캠프 _ 정유정> <모모 _ 미하엘 엔데> 같은 책들. 흥미진진하고 신나게 읽어놓고 이건 10대 때 읽어야 해! 하는 생각이 반짝 들었던, 혹은 학교 도서관마다 열권씩 비치해야지! 하고 생각하기도 했던,

하지만 아몬드는 달랐다.
문장이, 목소리가, 윤재가 말하고 있었다.
이건 청소년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나를 위한, 그리고 너를 위한 책이었다.
무언가를 남기고 안 남기고 와 상관없이 다른 소설들과 다른 이야기였다. - 모든 이야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 적어도 주인공의 감정과 태생이 이런 모습이었던 글은 흔치 않았다. 굳이 떠올린다면, 종의 기원이랄까.

 

 

 

 

종의기원 웹툰 버전, 주인공의 얼굴이 표지에 배치된 점이 비슷(?)하다.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말 배우기가 어렵듯, 주인공 역시 표현을 어려워했다. 아니, 표현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얼굴, 타고난 자신의 심장. 그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일인지는 윤재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넘어지면, 아 넘어졌구나,
누군가 상처를 입으면 도와줘야 한다는 걸

주인공은 알면서도, 다급해 하거나 두려워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좀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로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 타인의 표정에 어떻게 반응해야하는지, 윤재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감정이 없는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멈칫, 책의 맨 첫 페이지로 돌아갔다.

 


일러두기에는 그의 진단명이 있었다.


『 알렉시티미아.  Alexithymia
감정표현 불능증은 1970년대 처음 보고된 정서적 장애이다. 아동기에 정서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


소설을 읽지 않은 이들은 싸이코패스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익히 알려진,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 연쇄살인마들의 꼬리표.

어릴 때는 조용한 아이, 인내심 강한 아이로 보였던 윤재.
그는 정말 싸이코패스였을까. 

하지만 주인공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와 일치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다시 돌아올 곳이 있는 소년이었다. 

 


언제나 내 편인 할머니
그리고 그를 세상 안으로 녹아들도록 끊임없이 붙잡아 이끄는 엄마.


설사 녹아들지 않더라도, 윤재의 엄마가 잡은 끈은 아들을 붙잡고 세상 가까이를 맴돌게 했다.
달아나지 말라고, 외면하지 말라고. 엄마가 사라져 미래를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소년은 ‘학교를 다닌다’는 선택지를 움켜쥔다. 엄마가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기 때문이고, 그는 무엇이 옳은지를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겠지.


작가는 감정이 없는 주인공을 설정했지만, 그와 함께 하는 동안 나는 그의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이 얼마나 아늑할지, 그들의 곁이 얼마나 따뜻했을지를 ‘느끼게’되는 것이다. 

 

 

 

엄마, 그리고 할머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열일곱의 윤재를 붙잡아준 두 사람은 첫 번째 목차가 종료됨과 동시에, 윤재의 세상 밖으로 뿌리채 뽑혀 나간다. 그리고, 주인공의 세상 안으로 갑자기 들어오는 사람들은 전혀 낯선 사람들이었다.

 

 

 

윗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빵집 심박사

병원에서 마주친 윤교수

전학생 곤이와, 같은 반 여학생 도라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내가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한가지는 이게 ‘청소년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겠지. 부디, 그렇지는 않겠지. 후반부를 잡고 있는 내내 나는 부디 해피엔딩이기를 바랬다. 마지막까지 어찌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는지,

결말이 어땠는지, 주인공 윤재가 누구와 친구가 되고 누구와 등을 졌는지 나는 이곳에 남길 수 없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 책의 다음 타자가 될지도 모르니까.

이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도, 말할 수 없다. 어느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것이 삶이고, 영어덜트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전개가 아몬드니까.

 

 


다만 하나.
누군가 내 삶으로 들어오는 것은, 운명도 우연도 아닌,
나의 결정과 내 마음이 정하는 일임을 다시 생각해본다. 내게 소중한 사람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어쩌면 내가 문을 연 그 작은 틈의 넓이에 따라 결정되어왔는지도 모른다.

 


책을 다 덮고,
나는 작가의 말까지 모두 챙겨 읽었다. 그 후의 인물들이 어떻게 지냈다는 가상의 이야기라도 나오길 바랐지만 그렇진 않았다. 다만 한 달 동안 쓰인 이야기가, 3년의 시간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는 것. 두 번째 페이지 상단에 희미하게 인쇄된 Dan이란 사람이 작가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란 것. 그리고, 지금 내 일상도 나를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꼭 잡고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온전한 행복감을 새삼, 다시, 특별하게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아몬드.
그건 나에게도 있고, 당신에게도 있는 것이겠지만,
분명 같은 모양은 아닐 것이다.

 

내게 무엇이 남았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느꼈고, 그것으로 완벽한 소설이었다.

 

 

:)

 


내게 이 책을 건네주셨던 삼부작님께 감사를,
그 시작점에서 아몬드를 구매했을 찰스님께 고마움을 보낸다.

 

 

 


* 잘 쓴 책은, 널리 읽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