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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책 이야기

시를 쓰는 이유 / 인공지능 시집 _ 슬리스코프, 카카오 브레인 지음

by 이요상 2022. 8. 30.

시를 쓰는 이유 _ 시아(SIA) 저

 

시집을 집어들때, 보통의 우리가 품는 감정은 무엇일까.

기대감과 설렘, 두근거림과 호기심 같은 감정이겠지.

 

 

하지만, 시를 씨는 이유는 서평단(YES24) 신청을 할 때부터 다른 감정이 들었다.

호기심과

 

 

택배가 도착했을 때 목차를 읽으며 나는 한번 더 의심했다.

인공지능이 쓴 시, 시아라 불리는 시스템은 아마 알파고의 문학 버전이 아닐까. 입력된 기보대로 최선의 수를 놓을테지만,   바둑 한판의 긴장감과  경기가 끝났을 때의 짜릿함, 그 후련함을 알기나 할까.

 

 

하지만

시집을 펼쳤을 때의 느낌을 간략히 적자면,

???

어째서 맥락이 있지?

였다.

 

 

깜짝 놀랐달까.

의외로

시 중엔 제법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었고,

귀엽다고 느끼는 구절도,

시답다라고 느끼는 페이지도 있었다.

 

생각을 말아 쥐고
손을 펴서
시의 밑동을 툭, 쳐본다.



나는 독백Ⅰ에 나오는 이 구절이 특히 귀여웠는데,

인공지능 주제에, 어떤 내용으로 시를 쓸까 고민하는 과정을 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뒤의 내용 역시, 시가 쉽게 써지지 않는다는 고민의 내용으로 전개되었고 말이다.

ㅇㅁㅇ

 

얘가 뭘 알리가 없을텐데,

학습된 내용으로 패턴을 쓰는 걸텐데

왜?!

사람의 눈에는 이것이 서사로 읽히고

감정으로 느껴질까.

 

 

 

지인들에게

인공지능이 썼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보여줬을 때의 반응은 그보다 더 빛났다.

 

일부 구절이 마음에 든다는 사람,

잘 쓴 것 같은데? 라고 말하는 사람

하루를 위로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자가 SIA,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후의 반응은 다시 달라졌다.

 

1. 인공지능에게 위로 받다니 뭔가... 받았던 위로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2. 어쩐지 건조하더라

3. 헐, 진짜?

 

분명 꽤 괜찮았던 시집이, 저자가 누군지 알게 되는 순간, 문학 매크로를 돌려 인쇄한 종이로 바뀌어 나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시집은 좋았다.

잔디밭같았고

마치 한사람의 시인이 쓴 것 처럼 결을 가지고 있어서 놀라웠다.

여러사람의 글을 랜덤하게 짜깁기 하는 것일텐데, 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마치

이 환장할 봄날에 (박규리) 한권 속에 절의 풍경과 삶의 슬픔이 그대로 엉켜붙은 것처럼

울프 노트 한권이 (정한아) 여자의 목소리로 창과 같은 문장들을 던져내는 것처럼

에듀케이션 (김승일)을 읽으면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요녀석도

마치 한 사람이 쓴 시집처럼 느껴졌다.

관통하는 소재가 (연극, 우주, 수학이 주로 등장)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_ 아마 개발사인 슬리스코프에서 관통하는 주제의 시들만 엮은 것이리라 짐작해본다.

 

 

 

하지만

보통의 시집을 권할 때 처럼 말할 수 는 없겠다.

 

 

이건 보리차 한잔과 센베이 과자가 어울리는 시집이라고,

흑맥주 한잔과 어울린다고

반드시 이것은 미친 여름이나, 돌이킬 수 없는 겨울에 읽어야 한다는 추천사를 나는 끝내 적지 못하겠다.

 

 

 

인공지능은 아주 가까이 있고,

시인 한사람이 수년에 걸쳐 걸려 써내는 한권을 몇분만에 완성할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우리가 느끼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세상과 멀리 떨어져, 산 속의 절에서 박규리 시인이 느꼈던 감정을,

직접 탄광촌에서 일하며 지하의 어둠을 목격했던 윤조병 선생님의 희곡을,

정신병원에서 사람들과 부대낀 정유정 작가, 간호사였다는 그녀의 직업적 배경으로 써내려간 소설들이

인공지능의 작품들과 같은 무게일 수 있을까.

 

 

 

 

 

이와 비슷하고 유명한 케이스가 또 있다.

 

https://www.nextrembrandt.com/

 

The Next Rembrandt

Can the great Master be brought back to life to create one more painting? Discover the story behind The Next Rembrandt: www.nextrembrandt.com

www.nextrembrandt.com

렘브란트의 화풍을 완벽하게 학습했다는 인공지능, 넥스트 렘브란트.

이것이 화가의 자리를 대신할 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삶과 역사가 주는 감동을 AI가 완벽히 대신할 수 있을까.

 

아마도,

실제 사진의 왜곡을 자유자재로 불러오는 카메라 앱 B612와 비슷한 버전이 되지 않을까.

휴대폰에 설치해 나와 내 주변의 풍경을 렘브란트 풍으로 바꿔서 카톡 프사로 사용하는 재미있는 버전의 어플.

넥스트 렘브란트의 작품들은 분명 재미있겠지만, 감동적일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분명 우리의 휴대폰안에 있을 수는 있지만, 인쇄되어 벽에 걸려있을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