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이야기

뒤바뀐 영혼 _ 류팅 . 자음과 모음

이요상 2022. 4. 12. 23:54

독자와 필자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나간다.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긴 이야기로 시작해, 짧은 이야기를 읽어나간다.

어린시절 람세스와 해리포터를 읽던 나는

두권짜리 소설책을 거쳐 한권의 단행본으로, 그리고 다시 짧은 이야기가 있는 단편집들로 거닐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반대쪽에서 걸어오기 시작한다.

작가들은 짧은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 단편집을 내고, 그리고 아주 오랜 기다림을 거쳐 장편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독자와 필자는 다른 방향에서 걸어와 서로를 스쳐지나간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두 부류의 사람들은 책의 숲을 자유로이 거닌다.

원하는 시점에 긴 이야기를 읽기도 하고, 원치 않는 시점에 짧은 이야기를 읽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단편을 읽었을 때의 생경함과 충격은 제법 길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교과서를 통해 접했던 단편 소설이 아닌

내가 고른 단편집을 통해 읽었던 글들의 대한 느낌은 오묘하고 낯설고, 신선했더랬다.

(그것은 아마도 김애란의 '침이고인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선함과 낯섦이 그리운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중국 작가 류팅의 단편집 '뒤바뀐 영혼'

 

서평단 신청이 아니었다면, 중국작가의 소설은 내게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낯선 이름과 지명들, 어쩐지 검열을 거쳐서 애국을 하게 만들 것만 같은 선입견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어쩐지 익숙하다.

이상의 날개와도 김초엽의 단편과도 익숙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낯선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들은 호수에 잠겨있는 보물을 꺼내는 과정과 같다.

잔잔한 물결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손을 뻗는 순간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내가 보물이라고 여겼던 반짝이던 돌들은 볕으로 나오는 순간 점점 물기를 잃고 탁한 물체가 되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읽는 동안 시구같았던 말들은, 덮는 순간 지난하고 멸렬한 삶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책장을 펼치면 나는 다시 시를 읽게 된다.

기묘하고, 다시 기묘한 산책을 하는 기분이다.

내일의 출근을 앞두고, 오늘은 공원을 걷는 아이처럼,

내일은 돌봐야 할 아이가 있지만, 오늘은 소녀가 된 여자처럼 천진하게 읽게되는 마음이다.

 

 

작가의 묘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왜 이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것은 없다. 그는 다만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하지만 끝내 마지막 주인공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로지 과거다.

너무도 삶과 같아서, 읽는 동안 멈칫, 내가 읽고 있는 꼭지의 제목을 확인한다.

제목은 명확히 그 이야기지만, 읽는 동안은 이것이 뒤바뀐 영혼에 관한 말이란 것을 잊게 만든다.

 

 

 

 

 

 

 

낮보다는 오후에, 오후보다는 밤에,

이 책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 있다면 새벽 한시가 어울리리라.

 

 

 

어울리는 차가 있다면 서울의 밤 온더락이다.

현재의 중국은, 오늘의 서울과 다르지 않았다.

 

 

 

+ 번역학회에서 번역을 한 덕분에 한 작가의 작품집임에도 어떤 이야기들은 다른 질감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야기마다 번역가가 다르다.)

본래 같은 맥박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게 단편집의 특성인데,

그것이 깨어진 것 같아 아쉬운 사람과 더 좋은 사람들로 나뉘기도 할 것 같다.

나는 분명 두번째 부류의 사람이었다.

 

 

 

+ 도서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표지가 다소 다른데, 내가 찍은 컷은 겉 표지를 벗겨낸 판본이다.

그리고, 단언코 이쪽이 더 작가의 목소리에 어울리는 색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