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이야기

우리가 혹하는 이유 _ 존 페트로첼리

이요상 2022. 2. 4. 11:59


서평단으로 책을 받으면

일단 장점을 먼저 보게 되는 것이 사람 마음이예요.

 


서평단이 아니더라도,
저는 어쩐지 편집자와 작가에게 빙의하게 되곤 하거든요.

이 많은 페이지를 썼다고!?
아니 이런 구성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니 결말을 이렇게 했으면 다시 수정해서 원고를 어?!@$%*(
하, 오타 어쩔...

하고 생각해보지만, 리뷰에는 최대한 자제하는 편입니다.

책은 요리와 같아서 나에게는 매웠던 텍스트가 누군가에겐 딱일 수도 있고,
나에겐 너무 싱거웠던 서사가, 누군가에겐 강렬할 수 있거든요.
책바이책 사람바이사람!


그런데 여기, 그런 저의 결심을 깨트리는 책이 있습니다.



* 물론 서평은 개인의 감상이므로 제가 느낀 아쉬운 점이 다른 사람에겐 신경쓰이지 않는 미묘한 단점일 수 있습니다.

 


표지 너무 귀엽죠?

한동안 출판계를 구가했던 인문학책들의 표지와 느낌도 비슷합니다.

 



덕분에 어쩐지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애.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런 생각은 저 혼자만의 느낌은 아니었는지,
당시에 서평단 신청할 때 이 책이 유독 인기가 많았습니다.

 

 


우선
장점을 먼저 살펴볼까요?



첫 번째,
이 책의 내용은, 오늘,
보통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끔 웹상이나 뉴스에서 듣게 되는 신비한 이야기들.
지구 평평설이니 일루미나티니
백신666설이니 하는 이상한 이야기들 말이죠.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세상 신기한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이 대체 왜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지에 심리학적 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이런 음모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넷플릭스 만화 ‘은밀한 회사원’에서는 그 모든 음모론이 전부 진실이라는 설정으로 코믹 만화를 제작했습니다. 렙틸리언부터 외계인들 모두가 파트너로 등장하죠.)


책은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본인들의 거짓말을 유포하는지,
우리가 어떤 식으로 그것들을 믿게 되는지 여러 사건과 실제 예를 통해서 경고하고 있어요.

 



때문에

두 번째 장점은,
책이 표지처럼 가볍지만은 않다는 점이에요.

사회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거짓말은 음모론 외에도 많죠.


MBTI, 주식시장, 장사꾼의 상술, 정치인의 거짓말 등등

널리 알려진 이야기의 오류를 깨야 하므로
책의 내용은 상당수가 통계와 실제 논문, 진실을 기반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자는 자료 조사에 공을 들였고 쉽게 쓰인 책이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죠.
특히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런 유언비어에 휘둘렸을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구요.

 

 


BUT,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서평단이 아닌, 실제 서점에서 첫 페이지를 펼쳐보았다면,
과연, 이 책을 구매했을까요?

답은 ‘아니오’일 것입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책을 홍보하는 데 쓰였던 '개소리'라는 단어는 홍보용이 아니라 저자가 이야기 하는 내내 보통명사로 사용됩니다.

저 단어가 홍보용 이미지 뿐만 아니라 책 내용에도 엄청 많이 나와요.....

번역의 문제겠지만 사실 한국어 중에 Bullshit을 대체할 만한 단어가 없기 때문에 편집부에서 고민한 결과겠지요. 사전을 찾아봐도…. 비속어인 bullshit을 한국어 중 어떤 단어로 교체할지 고민했을 때 선택지가 거의 없었을 거란 추측도 되고요.

 

물론 사전적 의미로만 보자면 헛소리와 개소리 중에 bullshit과 더 가까운 건 '개소리'가 맞습니다.

그러니 틀린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책을 펼치고 '개소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소주를 한 잔씩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 책은 두 장을 넘기기 전에 비명횡사할 확률이 높아요.
비속어를 피하고 싶어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페이지 페이지마다 지옥이 따로 없죠.
누군가가 내뱉고 있는 욕설을 읽는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게다가
책에서 조명하고 있는 유언비어의 양상을
개소리에 꾀이는 파리 지수라고 명명,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보통명사로 사용합니다.

 


그런데요,


우리 한국 사회도 MBTI 테스트 안 해본 사람 없잖아요.
주변 사람의 카더라에 솔깃해 주식 좀 사들인 사람도 꽤 되고요.
그리고 필자가 예를 든 폰지사기부터 펀드 상품들은 실제로 손해를 본 사람들이 꽤 많아요.

그런데, 그런 그들이 읽는다고 가정했을 때,
이런 표현 방식은 .... (개인적으로) 편하게 읽기는 힘들었어요.


영어권의 bullshit과 한국어의 '개소리'는 그 질감이 일맥상통할 순 없겠죠. 
하지만 차라리
bullshit을 유언비어로, 파리지수도 뭔가 다른 단어로 교체했더라면,
좀 더, 매끄럽게.
최근 사회 문제를 보여주는 교양서적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자가 지으려 했던 이 책의 제목은 <'우리가' 혹하는 이유> 가 아니라 <'멍청한 니네가' 혹하는 이유>에 더 가까웠을지 모르는 구간도 중간중간 있었고요.

영어 원문은 조금 더 부드러웠을지 어땠을지 모르지만, 좀 가혹해요. ㅠㅠ
특히 실제로 이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읽기엔 말이죠.

 

 

 

 


투덜거리면서 리뷰를 썼지만, 이렇게 장문의 후기를 남기는 이유는, 그럼에도 필요한 조언들이 담겨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마음이 때때로 이렇게 단순하단 걸.
의심이 될 때는 왜? 가 아닌 어떻게? 로 길을 찾으란 조언들 모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분명 도움이 될 텐데 말이죠...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모두 좋은 책이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번 접근법이 틀렸다고 해서 두 번째도 틀리란 법은 없고요.
혹시 2쇄가 들어간다면,개소리 대신 다른 단어로 바꿔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슬쩍 남겨봅니다.

 

 

 


아, 그리고 넷플릭스의 은밀한 회사원을 추천하며 물러갑니다.
당신이 혹시 ‘음모론’을 믿고 있다면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