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이야기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_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어느 의사의 고백. 김현지 저 / 다산북스

이요상 2021. 5. 9. 00:16

읽히기 위해 태어난 책이 있고, 기록되기 위해 태어난 책이 있다.

이 책은 명백히 후자지만, 어느 책보다도 널리, 그리고 많이 읽히기를 희망한다.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_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어느 의사의 고백. 김현지 저 / 다산북스

 

 

 

 

 

고백하건대

잘 읽히지 않았다.

 

 

보통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거나 앞뒤가 없는 이야기여서 그런 책은 아니었다.

너무 '' 알고 있는 이야기여서 그러했다.

 

 

나는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고 있다.

병원의 히스토리, 환자들의 사연들, 그들이 의사에게 하는 거짓말들, 퇴원 그 이후의 이야기를 더 쉽게 접하게 된다.

그러니 환자들의 이야기, 그들이 빈부 격차에 따라 어떤 대접을 받고 있고, 여러 제도가 얼마나 제한적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읽지 않아도 결말이 훤히 보였다. 그럼에도 한 챕터씩, 하루에 조금씩 읽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다 읽은 뒤에는 참, 아직 이런 의사도 있었지, 이 슬픔을 바꾸려 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었구나 하며 표지를 쓰다듬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의사도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의사(많음. 진짜 이 이야기 하려면 밤새야함)

 

 

 

저자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는 의사였다.

 

의료현장을 기록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본인이 진료 본 환자의 기록조차 제대로 안남기는 닥터들이 부지기수다) 그곳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도에서 찾아서 바꾸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람이었다.

 

우리가 보통 만나는 닥터들,

환자를 앞에 둔 의사들은 당신의 사정보다도 당신의 수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정을 바꿀 수 없고, 돈이 없고, 치료를 받을 수 없고, 죽음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아프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저 유리 벽 너머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들의 사정부터, 그들이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허점까지,

매일 매일 오늘을 기록하고 있는 일간지들보다도 더 가치 있는 기록물이 이것이구나, 부디 시간이 지난 뒤에 모두가 혀를 차는 이야기가 되기를, 다들 믿지 않는 이야기가 되기를 하며 한장 한장을 넘겼다.

 

먹고 살기에 치여,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중환자실에 놓아야 하는,

요양원에 가둬두어야 하는,

발가락을 잘라 내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하지만 정작,

내가 읽으면서 가작 공감 갔던 챕터는 저자의 *직업병 이야기였다.

사람을 피해 휴가 때면 오로지 혼자가 되기를 꿈꾸는 그녀의 병.

 

나 역시도 사람이 싫고, 혼자 있는 게 좋은 순간이 너무도 많다.

병원에서의 소통은 언제나 일방적이고, 그들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결국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의사인 저자 역시도, 환자들의 말과 대우에 상처받는 인간임을 느끼며 묘한 위로를 받았다.

 

의료인이라는 조건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받았는지.......,

 

 

 

 

후반에는 병원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환자에게 많은 돈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변명이 함께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이 읽으면 이해가 될까. 나는 의사의 그 높은 연봉을 생각하면 절반은 이해를, 절반은 핑계라는 느낌 역시도 함께 받았다.

- 물론, 그 연봉의 능력을 해내는 절반의 의사들 역시 존재한다. 이 저자는 말할 것도 없고, -

 

유리벽 안쪽에 있는 내가 읽으니,

책 이야기보다도 너무 많은 생각과 현실이 파도처럼 텍스트 위를 뒤덮고 지나갔다.

내가 일하는 곳은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 이 병원에 오는 사람들은 또 얼마만큼의 불합리함을 겪고 나는 또 그것이 합당하다고 떠들어대야 하는지…….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불만이 있다면,

언젠가 당신이 아프게 될 예정이라면,

, 죽고 싶다면, 부디 한번은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게 진짜 병원이며, 대한민국 현실이다.

 

 

+ 그리고 저자에겐 진짜 박수를.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