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이야기

병명은 가족 _ 류희주 저 「생각정원」

이요상 2021. 2. 4. 01:21


올해는 좀 읽어보자! 라는 마음에 서평단을 신청했습니다.

(저는 읽다 쉽게 포기하는 스타일 입니다. 어찌어찌 모임의 방장이 된 것은 다정한 회원님들의 관대함 덕분이죠. :>!)

사실 두세곳에 신청서를 냈으나, 저의 비루한 리뷰 실력을 알아본 탓인지 당첨자 명단에는 한 번도 아이디를 내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저의 마수에 걸려든 불운의 책이 있었으니…. 바로



<소설 아몬드를 떠올리게 하는 표지>



‘병명은 가족’입니다. 
제목을 보는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최근 보도되었던 정신질환자들의 강력범죄 기사들이었죠.

 


'그래 이 사람들 ㅇㅁㅇ 어떤 사연이 있었을 거야.
어떤 불운한 과거나 말로 다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부모 밑에서 자란 걸지도 몰라!!'



제목만으로 스토리를 예측했던 저는

이상한 부모와 아프게 자란 아이들을 상상하며 서평단 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월 마지막 주 북스테이 여행, 출발 직전, 마법처럼 이 책이 도착했습니다.

 

 


측면에 [드림]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고,
편집팀에서 보낸 당부의 엽서 [나쁜 평을 써주면 삐져버리겠어!] 같은 것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뽁뽁이포장 안의 책만 무사히 손 위에 안착했죠. 서평단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특별하진 않았습니다. 뭔가 구입한 책이 뒤늦게 배송된 느낌이랄까요.
다른 점이 있다면 세월아 네월아 읽을 수 없다는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서평단은 정해진 기간 안에는 리뷰를 남겨야 합니다.




서평단 + 북스테이 덕분에 1월 마지막 주는 이 녀석과 함께 경북 여행을 했습니다.
아늑한 장소에서 읽었기 때문일까요. 제법 두툼한 녀석인데도 (여행일정 때문에) 중간에 책을 덮을 때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안동, 북스테이 / 풍경호스텔 in LiBRARY

 

 


▷ 잠깐, 리뷰에 앞서

저는 10년 전, 정신과 병동이 있는 알콜 중독 전문병원에서 짧게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때문에 중간중간 등장하는 의약품과 관련 기관들의 단어가 익숙했고, 제가 느끼는 이 책의 허들이 보통의 독자들이 읽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리뷰
기억을 더듬어 볼까요. 저는 병원에서 일했지만 파트는 행정직이었습니다.
환자의 기록을 보게 되더라도 밥을 몇 끼나 먹었는지, 약을 얼마나 먹지 않았는지를 체크해 전산에 해당 약 코드/식대를 입력하는 일이 주 업무였습니다. 그러니 정신과 환자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도, 때때로 그들의 분노를 실제로 만나고, 그들이 바닥에 뿌리는 약을 목격했다고 할지라도,
정신병 환자는 업무의 일환, 일상의 파편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엔 두려움, 거리감, 걱정, 동정심, 이타심, 내지는 짧은 공감대를 느끼는 일도 있었죠.
하지만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건 희미해집니다.
그들의 분노, 울음, 싸움, 경찰의 방문까지도 일상이 되거든요.

저는 때때로 
환자와 긴 시간 면담을 마친 뒤 건조한 표정의 원장님들을 보며 나와 비슷한 기분이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나는 미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속에서 무심결에 '네네 그러시겠죠'라는 대답을 하고 마는. 제삼자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들을 매일매일 대하긴 어려우니까.


그렇게 혼자 했던 추측을 뒤로하고,
진짜 의사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건 10년 만이었습니다.
새해의 입구에서 만난 <병명은 가족>에서였습니다.


제목만 보면, 감성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을 조금 덜 비난하는 시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네. 다 읽고 난 뒤의 감상을 말하자면
전자는 틀리고, 후자는 맞았습니다.

글은 전반적으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이론으로 글 곳곳을 받쳐주고 있었습니다. 흔히 요즘 말하는 '가해자의 서사'를 배제한 글이었죠. 피해자의 시선도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면담, 기록을 토대로 들려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조현병으로 어머니를 폭행한 철수씨와, 법정에 설 그의 정신감정을 해야 하는 의사. 저는 그 상황에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애쓰는 작가의 고심이 그대로 느껴졌어요.

알콜중독자 박씨, 그를 떠맡게 된 딸 영지의 이야기에서도 작가는 누구도 동정하지 않고, 그들의 증상과 실제, 딛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 어떻게 병이란 것을 가늠하고, 치료할지를 고민하는 의료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알코올 의존, 거식증, 지적장애, 조현병, 공황장애, 공포와 우울,
이 많은 진단명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작가와, 그 이야기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내과에서 약을 타가면서, 좋은 목사님을 소개해 달라고 했던 아주머니.
직원의 사소한 행동에도 나를 무시한다며 난동을 피웠던 보호자,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도용해 수면제를 타려 했던 사람들까지.

그들이 정신과 의사를 만났더라면, 그 주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들은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진 않았을까요.


감성적인 이야기라는 예측은 틀렸지만, 항상 차가워 보였던,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였던 의사의 감정을 통해, 다시 그들을 들여다보는,
그들을 이해하는 계기를 차분히 제시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인종, 국가에 상관없이 전 세계의 1%가 겪는 조현병.
정확히 발생기전을 알 수 없는 그 증상들과,
노화와 장수의 흐름에서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된 치매까지,

 


이성적인 현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매일 대하는 인간적인 고민에 대해서도 작가는 고백합니다.
환자들이 하는 말이 거짓인지, 포장인지, 축소인지, 망상인지, 의사도 알기 어려움을

정신병과 우울의 경계를 누군가가 재단하고 나누는 일의 모호함을

하지만 의사는 포기하지 않고 기록하고 주변 가족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오히려 가족들이 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어도 다시, -그들이 병원에 내원하는 한- 지켜보고 말을 걸고, 처방할 수 있는 약들을 그들에게 내어주죠. 

 

 

 

 

▶ 간추린 리뷰

 

정신분석학은 활자로만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며 정신질환자는 모니터 너머의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누군가의 딸이 될 수도 있다.

책은 무거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썼고, 차가워 보이는 그들의 복잡한 심정을 다시 천천히 들려주는 고백서였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습니다.'

마치 주문같은 작가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전해 지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다른세계의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이거나, 내일의 당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