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이야기

턱걸이를 했는데 배가 겁나 당긴다 「독립출판」

이요상 2021. 1. 26. 23:58

(추천 책 이야기에 있지만 제 일상 글에 더 가깝습니다.)

 

 

제가 사실 작가인 이종혁씨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이종혁씨에게 미안합니다.
제 티스토리는 유명하지 않으니 아마 검색해도 49페이지 정도에 이 글이 걸리겠죠. 네. 그게 그래도 다행입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올해는 독자의 소임을 다해 읽은 책들의 후기를 남겨보고자 합니다. 좋지 않다는 평도 오가겠지만, 읽히기를 바라고 독자에게 온 책이니 후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턱걸이를 했는데 배가 겁나 당긴다 _ 이종혁 「독립출판」

 

 



가볍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오래 읽었어요.
구매한 날을 기억하려고 휴대폰 갤러리를 뒤적였는데

 

 

 

행궁동 RND떡볶이 



작년 8월 16일이더군요. (저는 특정 일자를 떡볶이로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종종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무지하게 더웠어요. 마스크는 쓰고 있죠, 실내는 위험할 것 같죠. 어딜 들어가긴 꺼려지고, 바깥 길을 걷고 싶어 수원 화성을 갔는데, 모이지 말라고 문을 닫아걸었더군요.

 

아, 아니요. 수원시를 원망하는 건 아닙니다. 그곳에 간 건 제 결정이었고, 모이지 말라는 데도 굳이 간 저에게는 그래도 가까운 도시였거든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요.

 

 


그래도 여기까지 나왔는데, 왠지 그냥 올 수가 없는 날이었죠.

 

www.instagram.com/broccoli_soop/


서점에 들렀죠. 브로콜리의 숲.
초록색 꽃인 그 이름만큼이나 간판도 눈에 띄지 않아서 지도를 보고 요리조리 기웃거리면서 갔어요. 아, 괜찮아요. 골목에서 가게를 찾는 일을 좋아한답니다. :)


그날따라 컨디션이 안 좋은 고양이를 위해 서점 주인은 조심조심 들어와달라고 말씀하셨고, 주춤주춤 걸으며 책꽂이를 둘러보다 보니 하필,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이 내 몸 같았고, 표지는 그날의 풍경 같기도 해서

 

 

 


(근데 이제보니isbn이 없네요)


저는 충동적인 사람이지만
첫 장을 꼭 읽어보고 책을 사는데,

그 첫 장이 좋았어요. '꼬꾸라지는 우리'라는 그 제목과. 제목의 글씨체와 본문의 여백과 줄 간격까지.

네. 책은 나쁘진 않았어요. 좋은 점도 중간중간 많았죠. 가장 좋았던 점은 표지와 제목이었고, 아쉬웠던 점은 페이지 건너 다음 장 그다음 장 정도.

 

 


읽으면서 '사랑과 가장 먼 단어'가 가끔 떠오르기도 했어요. 문체는 전혀 비슷하지 않았지만,
(제가 읽을 당시) 알려지지 않은 에세이집이라는 점.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 ('턱걸이를 했는데'는 후반부에서)
에세이와 시의 경계에 있는 글들이 뒤섞여 있다는 점. 
그래서 아마 '사랑과 가장 먼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점점 다음 페이지를, 그다음 이야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내가 스무 살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 했던,
지금은 더는 고민이 아니게 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

이건 나쁜 점은 아니었어요.

 

때때로 그 순간을 떠올리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내가 순수했던 그때, 별것 아닌 거로 괴로웠던 그때, 아무렇지 않아 해선 안되는 문제들의 무게를 알고 있었던, 조금 더 인간다웠던 그때를요.
하지만 요 책에선, 작가가 그 고민에 답을 만들어 주면서 끝나요. 미처 고민이 깊어지기도 전에 말이죠.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꼭지들이 있음에도 제 추억을, 그 빌어먹을 풋풋함을 떠올리는 데까지는 연결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불편했던 지점도 있었어요.
물론, 이건 작가님 때문은 아니겠죠. 최근 일련의 사태 때문에 걱정되는 거겠지만,

 

 

 


연애담을 들려주는 부분에서, 보통의 연애# 라는 제목과 함께
실제로 존재하는 누군가의 아내에게, 아이의 엄마에게, 자신과 상관도 없는 꼬마에게, 내 아이일 수도 있었다. 라는 문장을 그 아무개가 듣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내가 그녀라면 어땠을까.
이 책을 활활 태워버리지 않았을까.

나는 이 에세이가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작가님이 건설업에 종사하지 않았으면, 혹은 이 책을 출간한 작가의 이름이 그의 실명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랬어요.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책 속의 그녀가 이 책이 출간된 사실을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모르는 일이겠지만요.

 


네. 알아요.
이건 독립출판물이에요. 편집자의 도움도 없고 여러 권의 책을 다뤄본 출판사의 코멘트도 없이 세상 밖으로 나왔겠죠.
완벽할 순 없고, 그 묘미와 모험을 독자도 함께하려 모였지만.
수필을 읽으며 제3의 등장인물을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일이 어쩌면 작가의 의도이자 능력일지도 모르지만,



책은 가늘게 읽혔어요.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는 것과, 이 한 권을 내는 게 그에겐 고비였다는 무게감도 함께요.

 

 



다음에, 
이 다음에
작가의 두 번째 수필집이 나온다면,
저는 아마도 두 번째 페이지까지 읽어보고 제 책꽂이로 데려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