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 이야기

빛의 현관 (ノースライト, North Light) _ 요코야마 히데오 / 검은숲

이요상 2021. 1. 12. 01:07




나는 모르겠어. 우리가 왜 이야기를 별점으로 평가해야 하는지를,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좋아했던 책들의 점수에 동의했던 적이 없거든.
싫어하는 책들도 마찬가지로,

 

만약에 정말로
우리가 어떤 책에 대해 평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어떤 모양으로, 어떤 목소리로, 어떤 비유를 들려줘야 다른 이들도 알 수 있을까.

 

내가 그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두근거림과,
때때로 부족했던 그 조각들을, 놓쳐버린 공백들을,



오늘은, 그래서 조금 길게 이야기해 보려 해.


 

 

 


그 주인공, '빛의 현관'이야.

 

 



이야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꼽자면 그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같은데 (다시 생각해도 우위를 가를 수 없어.)

하나는 도나토 카리시의 '속삭이는 자'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요코야마 히데오의 '루팡의 소식' 이야.

둘 다 내 마음속 넘버 원이지만, 단 한번 읽었던 책들이야.

(데려온 표지는 모두 개정판이 나와서 현재는 유통되고 있지 않아.)

처음 읽었을 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두 번 읽지는 않았거든.

 

 

도나토 카리시의  '속삭이는 자'  

 

요코야마 히데오의  '루팡의 소식'


왜 그런 거 있잖아. 어느 추운 날 갑자기 들어갔던 국숫집의 추억, 흐린 날씨와 맞물려 맛있었던 한 숟갈이 너무 좋아서, 다시 찾아가진 않는 거지.
그 따뜻함이 희석될까 봐.

대신에 나는 두 작가의 다음 작품들을 사 모았어.
읽은 책도 있고 읽지 않은 책도 있지만, 아무튼 그래. 

그래서 '빛의 현관'은 기다렸다 두 손에 품은 책이었어.

 

 

 

 

 



표지가 보여? 따뜻해 보이지,


하지만 이 그림은 풰이크야.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 예쁜 표지지만 책에 나오는 빛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번외편으로 원작의 표지를 볼까?


 

 


하아, 얘는 더 심각하네……,


국내판의 빛은 너무 예쁘게 포장한 나머지 남쪽의 빛처럼,

일본판의 빛은 이야기가 담고 있는 풍경과 달리 어둡게 해석했어.

아, 일본에서는 이미 드라마로 나왔었다고 말했었나?

 



작년 연말, NHK에서 ‘ノースライト’ 노스라이트라는 제목으로 방영했어.


나는 물론 보지 않았지.
관련 이미지만 몇 장 찾아봤는데, 혹시 책을 읽을 생각이 있다면, (이미 책을 읽었다면) 드라마를 찾아보지는 말아줘…….

책을 읽은 뒤 내 머릿속에 있던 Y주택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설계도나, 작가의 그림이 어떤 모습이었든,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빛이 훨씬 더 아름다웠어. 영상 속 투박한 Y주택은, 내 상상을 이길 수 없더라고. ㅠㅠ 

 

 


하아, 그래도 내 머릿속 이미지와 조금이나마 일치했던 부분이 있다면 주인공의 이미지였어.

 

니시지마 히데토시(にしじまひでとし, 1971)


건축사 아오세 미노루.
선한 얼굴에 심지가 곧은 어른이면서, 약한 부분은 또 그대로 약해 빠진 사람.

 

 


누군가는 상상 속의 그와 다르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는 바로 이 ‘아오세’가 시작하고 끌고가.

 

이혼한 뒤 겨우겨우 출근하고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기묘한 의뢰를 받고,

그는 열정을 회복해 정말 혼신의 힘을 기울여 Y주택이라는 집을 지어.

 

그냥 열심히 한 게 아니라, 내 추억속에서, 내가 꿈꾸었던 집을 선택해.

그리고
모두가 선택하는 방식과 반대로,
북쪽으로 창을 낸 목조주택을 선택하지

 

 

 


[ 아오세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도면을 그렸다.

평면도, 입면도, 전개도, 단면도, 그리고는 버리고, 그리고는 고치기를 반복했다.

채광 콘셉트가 집의 외형을 결정했다 해도 좋다.

북면의 벽 높이가 처마 높이의 최고치가 되는 부분 복층 구조,

북향의 한 변을 혁신적으로 길게 뽑고, 남측 변을 대담하게 좁힌 사다리꼴의 외쪽 지붕.

25분의 1 크기의 커다란 모형을 만들어 내부에 빛이 들어오는 모습을 관찰했다.

계절과 시간에 따른 입사각을 계산해서 실내구조와 창의 위치, 모양을 정했다.

그래도 부족한 빛의 양을 보충하기 위해, 아니, 이 집을 진정한 ‘노스라이트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 끝에 고안한 ‘빛의 굴뚝’을 지붕에 달았다. - P.42]

 

 

 


어떤 집인지 상상이 돼?
편백나무를 사용해 은은한 향기와 부드러운 빛이 어우러지는 집.
아오세는 그런 집을 지어.

그리고 그의 대담한 도전은 유명 건축물들을 소개하는 건축잡지 [200선]에도 실리게 되지.
이 잡지는 따로 살고 있는 딸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자랑이고,

이 건축판에서 대학 졸업장도 없는 아오세를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버린 예술작품인 거지.


그런데,


어느날 이상한 연락을 받아.

‘Y주택과 똑같은 주택을 지어달라.’

물론, 별난 부탁이긴 하지, 하지만 아오세에게 이상해 보이는 지점은 거기가 아니었어.

“잡지에서 본 집이 너무 궁금해 찾아갔는데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어요.” 

의뢰인에서 온 한통의 전화,

아오세는 걱정이 몰려와.
퇴직금을 모아 두 딸과 아내, 아들과 함께 살겠다고 말했던 의뢰인은,
왜, 입주하지 않은 걸까.

아오세가 혼신의 힘을 다한 아름다운 그 집이, 겉보기와 달리 실제로 살기엔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집주인에게 어떤 변고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아직 이사를 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고,

걱정이 된 아오세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넣고,

연락이 되지 않자 결국 Y주택을 찾아가.

 

물론, 아무도 살지 않았지. 
집 주변엔 아무 잡동사니도 없고, 내부는 커튼으로 가려진 모습이었어.

먼지가 뽀얗게 앉은 집에는 낯선 남자들의 신발자국들과
2층에 덩그러니 놓인, 마치 예술품 같은 의자,
그것을 본, 동행 건축사 사장 ‘오카지마’는 던지듯이 한마디를 하지.

‘이거, 다우트 작품 아니야?’

 

 

Photo by Connor Misset on Unsplash



이 작품엔 중요한 등장인물 셋이 있어.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없겠지만, 중반부까지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지 알 수 없게 한 배치 덕분에 독자들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지나가지.

 

 


하나. 주인공 아오세

둘, 건축사 사장 오카지마

셋, 갑자기 나타난 의자의 설계자 다우트

 

 


다시 한번 말해볼까.

 

 


하나, Y주택의 설계자이자 히나코의 아빠 ‘아오세’


둘, 아오세의 친구이자 잇소의 아빠 ‘오카지마’


셋, 고향을 잃고 살면서 잠시 머물렀던 일본에, 죽어서 묻히고 싶다고 말했던 남자 ‘다우트’

 

 

 


출판사에게 미안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순 없겠지만,

내가 읽은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었어. 그렇다고 스릴러는 더더욱 아니었지.

 

 

‘빛의 현관’은
요코하마 히데오의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있는 가족 드라마로 분류 되었어야 해.
그랬다면 이 책은 분명 더 빛을 발했을 거야.

 

 

겨울날에 만났던 따뜻한 국물처럼,
오랫동안 걸은 뒤 마셨던 차가운 보리차처럼,
일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던 길, 입속에 밀어 넣었던 박하사탕처럼,

 

 

Y주택, 사라진 집주인.
그를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롭고 미스터리하지만,
그 증거의 유일한 조각인 ‘타우트의 의자’를 따라가는 길은 담백하고, 오히려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하는 길이지.

내가 사는 곳과, 살았던 곳과, 훗날 살고 싶은 곳에 대해서,
한때 내가 함께 했던 사람들과, 지금은 멀리 떨어진 그들과, 또 먼 미래 함께 살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  “오카지마, 하나만 물어봐도 돼?”
“자세한 얘기는 좀 기다려.”
“죽을 때는 어디서 죽고 싶어?”
“그게 무슨 소리야.”
“죽으면 어디로 돌아가고 싶냐고.”
“취했어?”
“아직 반밖에 안 마셨어.”
“집이겠지, 보통 누구나.”

 

- P.166 ]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히틀러를 피해 망명하듯 도망친 일본,
그곳에서의 삶의 기록이 비현실적이고 소설적이라 허구라 생각했지만,
Bruno Taut, ‘브루노 다우트’는 실존 인물이었지.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었던 다우트는, 일본에 수많은 가구를 남기고, 먹고살 것 없던 소도시의 사람들에게 공예품을 만드는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줬던,

아오세가 그의 의자를 추적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느 곳에 살았는지를 독자도 함께 알 수 있어.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어떻게 되냐고?

 

‘빛의 현관’에 짜릿한 반전은 없어.
끔찍한 죽음도 없고,
몸서리치게 만드는 고백도 없어.




과거와 빛,
추억과 애정, 그것들이 모여서 거대한 드라마를 만들지.
사람이 사람을 붙잡고, 포기하지 않게 만들고, 오히려 용서하는 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479페이지의 여정.

 


나는 모르겠어. 우리가 왜 이야기를 별점으로 평가해야 하는지를,
솔직히 말해, 나는 내가 좋아했던 책들의 점수에 동의했던 적이 없거든.
물론, 빛의 현관은 꽤 높은 별점을 받고 판매되고 있어.

하지만 그것에 내가 동의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야.

별점이 이 이야기를 제대로 말해 해주는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 뿐이야.

 



이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관한 이야기야.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이정표가 없는 곳에서,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 숲길에서,
어디가 북쪽이고, 어디가 동쪽인지도 모르는 그 불안감 속에서 본능적으로 아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어른의 이야기.

 

 


당신도 방황하고 있다면,
이 책은 분명 괜찮은 위로가 될 거야.

허무하게 끝난 하루의 끝에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마시는 홍차와 계란과자같은 이야기니까.

나는 읽는 동안 매우 따뜻했어.



- 빛의 현관 후기, 마침

+ 연말 선물로 책을 선물해준 독서모임 '은비'님께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